동화가 이루어졌던 점은 도시국가들의 가장 특징적인

로마는 오랫동안 변화를 거듭하면서, 로마와 역사적 궤적을 같이 했던 그리스 도시국가들 은 미쳐 갖지 못했던 근본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란 직접적으로 국가 권력과 법률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협소한 공동체라는 의미 정도였다. 로마에서는 이와 달리, 도시국가는 무엇보다도 일정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 즉 출생에 의해 획득하 거나 행정권자로부터, 가장으로부터, 또는 법률에 의해 "시민권"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공동 체였다. 따라서 로마 시민의 권리는 본국의 국경을 넘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영토확장도 권리의 확장에 한몫을 했다. "식민지들(최초의 식민지인 오스티아에서부터 리 용과 카르타고와 쾰른을 거쳐 레바논의 발베크에 이르는)"은 이탈리아 반도와 대양 저편까 지 펼쳐진 로마의 영토이자 로마의 몫이었다.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국가를 이루었던 이들 식민지는 굳이 로마와의 관계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 개인들간에 원만하게 면이다. 옛 노 예들에서부터 로마에 사는 외국인들과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까지 모두가 로마로 귀화했는 데, 이는 BC 89년 이탈리아의 동맹국들이나 AD 1세기 말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집권기에 에스파냐의 도시국가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이러한 시민권 정책은 두 사지 축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라틴" 이라고 불리는 시민권이 있었다. 라틴은 공화정 초기부 터 로마의 식민지들과 라틴 동맹국들에 적용하던 것으로, 합법적인 결혼과 기타 사안에 대 한 결정권만을 인정해 주는 시민권이다. 라틴들은 로마에 일정하게 거주하지는 않았으므로 로마에서 투표할 권리는 가질 수 없었다. 제정하에서는 라틴 도시들의 비로마인들도 그들 이 거주하는 자치도시를 관리하거나 행정관직을 수행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가문 전체가 로 마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로마 심ㄴ권을 모든 "자유시민"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더 이상 법률적으로 "라틴" 도시라는 구별은 무의미하게 되어버렸다. 보편적인 모델의 한계 로마의 영향권 내에서는 도시국가의 모델이 실제적인, 혹은 이상적인 사회조직 형태로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제국 내의 도시들은 도시국가의 개념을 어느 정도는 달리 설정했다. 시리아나 고 대 프랑스 지방인 갈리아의 도시들, 자기네 고유의 모습을 고수한 도시들, 혹은 3세기에 접 어들어 도시국가의 반열에 오르기 이전의 이집트의 도시 같은 페레그린의 대도시들은 결코 완전한 도시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 로마 제국 안에도 도시국가의 모델을 무시하고 전혀 다른 조직을 갖추고 있는 지역 이 있었다. 변방의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나 라인강과 다뉴브강 유역, 영국과 시리아 등, 때때로 로마 군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로마의 방어선 역할을 하던 교통로 주변의 지역들이 그러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로마와 같은 조직보다 토착 조직이 한결 우세한 경우 를 찾아볼 수 있다. 광대한 지역에 결쳐 정착했던 초기 로마의 트리부스(부족 중심의 원시적 사회조직:역주) 형태가 북아프리카, 고대 프랑스, 영국 등의 지역에서는 계속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런 지 역의 중심도시는 별 영향력이 없는 것이 보통이어서, 고대 말기에 오면 명칭 자체가 그곳에 살고 있는 토착 부족의 이름과 혼동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너무나 인위적으로 꾸며서 오히려 촌스러운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